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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교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교육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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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함영기씨는 오마이뉴스의 기사로 몇 번 만남을 가진적이 있다. 사실 교육의 제1 참여자였던 학생 시절에는 교육에 대한 아무런 감흥도 그래서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유도 관심도 없었다고 해야겠다. 오히려 교육의 제1 주체자인 학생은 커녕, 교육은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공간인 학교 또한 교육 정책을 수립 관리하는 정부의 몫이라고 여김으로써, 스스로를 소외 시켰었다는 고백이 가슴아픈 진실이었다. 무사유의 삶을 관성적으로 살아가다,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새 생명의 탄생이 가지는 신비함과 경건함은 모든 엄마 아빠가 누리는 행복한 경험이다. 나에게서 비롯한 두 아이의 삶의 시작은 또한 나의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하나보다. 그렇게 무심했던 교육에 대해서도 사유의 싹이 움트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이렇게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고민이 이루어질 때를 즈음하여 인터넷 기사 검색을 통해 저자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단편적인 기살를 통해 단편적인 공감함에 그치고 말았지만... 익숙한 저자의 이름과 개인적 상황으로 항상 머릿속을 맴도는 '교육'이라는 테마가 주는 관심에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교육에 관계되는 구성요소로 사회, 개인, 학교, 교사, 학생, 수업, 평가 등으로 분리하여 각 요소 관점에서의 현실과 문제점을 집어내고 생각하도록 들춰낸다. 그리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혁신, 제안을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선발적 교육관' 이라는 용어로 함축된 우리 교육의 문제는 결국 구조적 문제로 귀결된다. 선발을 위한 줄세우기. 이로인한 무한경쟁. 경쟁에 앞서기 위한 과도한 학습. 이를 돈으로 해결하는 사교육. 선발의 공정정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형식화. 형식에 맞추어 암기식 그리고 주입식 교육. 이로인한 교육의 내재화 실패. 그로인한 인재역량 약화. 이를 해결하려는 또다른 임시 처방식 학생 교육 착취.... 끝없이 이어지는 이 모든 병폐의 근원이 바로 '선발적 교육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의 사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함이 드러나는 것 같다. 교육을 자본이 요구하는 우수한 노동력 제공을 목표로 하는 활동으로 규정하는 현재의 선발적 교육관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이란 개인이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재능을 키워 함양하며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 속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삶의 과정들을 내재화 시키는 활동으로 규정할 것인가? 아주 당연하면서도 명백한 교육 개념이 엉뚱한 개념에 함락되고 유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교육 사유]라는 단어를 통해, 그 가느이 '무사유'에 대한 통렬한 질타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분야가 그렇듯 기득권이 제공하는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 대느라 사유함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사유의 힘을 되찾으라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제목에서 이 책은 교육 정책가, 정치가 등 교육 구조를 결정하는 기득권자들에게 전하는 말이 아닌, 교육 구조에 억압당하고 있는 교사와 시민들을 위해 쓰여졌음을 명시하고 있다. 아마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포기를 기다리는 허망한 희망을 갖고 있기에는 지금의 교육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며, 실천하는 교사와 깨어있는 시민의 생사적 투쟁만이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안따까운 진단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초등 3학년과 5학년의 학부모로서, 아직까지는 사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몰지 않고 교육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상태를 유지 시켜줄 수 있을까? 현재의 교육 구조 속에서는 아마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 아무런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 그대로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생각은 망상일 뿐 사유가 될 수 없다. 교육 망상이 아닌 교육 사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서연아빠 / 2014-03-10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어구라고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사유’ 그것은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현재 우리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과 대비되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저자 함영기 선생님은 현직 교사로 제직하면서 많은 가슴 아픈 교육 현실을 마주한 것 같다. 그의 프롤로그가 사교육에 종사하고 있고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나에게도 참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온 몸으로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과 맞물려 변질해 가는 교육, 그리고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점을 같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실천하는 교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교육사유>의 목적으로 보인다. 교육의 일선에 있는 교육의 직접적 당사자들인 개인과 그와 연관된 커뮤니티로 나누어 ‘사회, 개인, 학교, 교사, 학생, 수업, 평가, 혁신, 제안’의 세부적인 9가지 항목으로 저자는 교육의 사유를 잘 담아내고 있다. 얼마 전 EBS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교육혁명 15세에 주목하라>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심각한 중2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아이가 겪는 불안한 마음의 상태와 위태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는 모습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안타깝게 비춰지고 있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속에서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쉴 새 없이 바뀌는 교육정책에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와 부모들의 마음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청소년 시기에 전인적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힐링’의 의미가 원래는 매우 좋은 의미이나 타인을 배제한 자아만을 위한 목적으로 전락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아이는 매우 피곤에 지쳐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소통, 그리고 그들 또래에 즐길 수 있는 신체적 활동을 통한 유대감 형성, 즐거운 지식의 원천이 되는 곳이 바로 학교이어야 하는데 왜 힘들어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예로 든 핀란드의 고등학교의 아레나 사진이 놀라움을 준다. 학교 안에 이 광장에서 아이들은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정형화된 우리나라의 학교와 대조해보니 우리의 학교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동화될 수 있는 이러한 분위기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교육의 기능화와 직능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사의 탈 전문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현실은 좀처럼 학교 외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다. 생각하고 직접 만드는 수업교안이 사라질 때 교사의 사유도 사라진다는데 동의한다. 한 편으로 교사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교권이 땅에 떨어져버린 현실에서 그분들의 자부심을 다시금 살려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데 동감한다. 창조경제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 아이들의 창의적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수업과 평가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병폐를 안고 위태롭게 버텨나가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의 면면들을 신랄하게 꿰뚫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현실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며 많은 독자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이현규 / 2014-03-04

    이 책을 절반도 읽기전.. 책읽기 좋아하는 주위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중학교수학교사이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한다. 사회, 개인, 학교, 교사,학생, 수업, 평가,혁신, 제안.. 이렇게 9개의 챕터로 나누어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을, 제안을 쏟아내고있다. 주변에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은 정말 많다. 우리집에만도 10여권은 있는듯하다.. 기존의 책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척 답답했지만, 뾰족한 해답이 없어 한숨만이 나왔다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교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제안을 내놓고있는 점이 다르게 생각됐다. 교육을 정치와 분리해 20년을 지속적으로 일관된 교육정책을 수행할수있었던 핀란드교육에 대한 이야기.. 학력평가시 세계 1위라는 핀란드와 우리나라.. 하지만,학생들의 행복지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전체교육비중 사교육비비율등.. 학업성적말곤 모두 다르다는 핀란드와 우리나라.. 그 결과 한 나라는 모든 나라에서 선망하는 교육울하고있는 나라로.. 한 나라는 교육을 직접 접하는 자국민이나, 주변에서 바라보는 외국인이나 모두의 우려가 끊이지않는 교육을 하는 나라로 달라졌다는 점이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다. 정권이 바뀌면 기존의 교육정책을 바꾸고는, 그것이 이미 주변국에서 실패한 교육정책일지라도 굳이 진행하는 교육정책가.. 교육실무자들이 우려하고 반대해도 끝까지 밀고나가는 이해할수없는 똥배짱을 지닌 그들의 모습이 정말 '벽'처럼 느껴진다. 교육에 관심있는 이들도, 그동안 관심없던 이들도 이 책은 다 읽어보면 좋겠다! 교육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면좋겠다! 정치에 의해 휘둘리는 교육은 이제그만 보고싶다! 진심으로 '교육'만을 바라보고 심사숙고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최선의 정책을 오래도록 실천하며 우리교육을 바로서게 했음 좋겠다! 핀란드교육 부러워하는것도 그만! 우리스스로가 우리공교육을 자랑스러워하고 사교육도움없이 학교에 우리아이들을 믿고 맡길수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제발 좀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모두가 함께 세상을 살아갈수있는 길을 열어가면 좋겠다!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진짜 학교로 모두 바뀌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수기 / 2014-02-07

    작년(2013년)에 처음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깜짝 놀랐다. 세월이 흘렀건만 30여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와 달라진 게 정말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그마나 아이들나에게 인성교육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학교는 정말 실망 자체였다. 권위적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긴긴 훈화,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 이 책의 저자처럼 깨어있는 교사가 있다는 게 정말 반갑다. 더군다나 이 책은 표지 고를 때 참여했었는데 책이 출판되어 나오니 더 반갑다. 이 책은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교사, 학생, 부모 모두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상당수의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학교수업에 흥미를 못느낀다고 한다. 이런 폐단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글자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에 선행학습을 했든지 안했던지 상관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셨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처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이것도 못하냐?'고 놀리면 잘난척 하지 말라고 오히려 혼을 내셨다고 한다. 간혹 선행학습을 하여 학교 수업에 집중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휩쓸려 선생님의 설명을 놓칠 때도 있지만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되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오인할 수도 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듯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꼭 성적 순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정한 학습 효과를 시험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냐는 것이다. 지식의 내면화, 즉 공부한 지식을 내 것이 되고,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지식만 달달달 외우고 성적만 잘 받으면 되는 것인가?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학생과 교사들을 소모시킬 수 잇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솎아내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다른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전인적 발달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젤 / 2014-02-06

    작년(2013년)에 처음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깜짝 놀랐다. 세월이 흘렀건만 30여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와 달라진 게 정말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그마나 아이들나에게 인성교육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학교는 정말 실망 자체였다. 권위적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긴긴 훈화,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 이 책의 저자처럼 깨어있는 교사가 있다는 게 정말 반갑다. 더군다나 이 책은 표지 고를 때 참여했었는데 책이 출판되어 나오니 더 반갑다. 이 책은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교사, 학생, 부모 모두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상당수의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학교수업에 흥미를 못느낀다고 한다. 이런 폐단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글자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에 선행학습을 했든지 안했던지 상관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셨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처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이것도 못하냐?'고 놀리면 잘난척 하지 말라고 오히려 혼을 내셨다고 한다. 간혹 선행학습을 하여 학교 수업에 집중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휩쓸려 선생님의 설명을 놓칠 때도 있지만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되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오인할 수도 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듯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꼭 성적 순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정한 학습 효과를 시험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냐는 것이다. 지식의 내면화, 즉 공부한 지식을 내 것이 되고,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지식만 달달달 외우고 성적만 잘 받으면 되는 것인가?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학생과 교사들을 소모시킬 수 잇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솎아내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다른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전인적 발달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작년(2013년)에 처음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깜짝 놀랐다. 세월이 흘렀건만 30여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와 달라진 게 정말 하나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그마나 아이들나에게 인성교육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학교는 정말 실망 자체였다. 권위적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긴긴 훈화,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 이 책의 저자처럼 깨어있는 교사가 있다는 게 정말 반갑다. 더군다나 이 책은 표지 고를 때 참여했었는데 책이 출판되어 나오니 더 반갑다. 이 책은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교사, 학생, 부모 모두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상당수의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학교수업에 흥미를 못느낀다고 한다. 이런 폐단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글자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에 선행학습을 했든지 안했던지 상관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셨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처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이것도 못하냐?'고 놀리면 잘난척 하지 말라고 오히려 혼을 내셨다고 한다. 간혹 선행학습을 하여 학교 수업에 집중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휩쓸려 선생님의 설명을 놓칠 때도 있지만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되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오인할 수도 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듯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꼭 성적 순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정한 학습 효과를 시험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냐는 것이다. 지식의 내면화, 즉 공부한 지식을 내 것이 되고,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지식만 달달달 외우고 성적만 잘 받으면 되는 것인가?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학생과 교사들을 소모시킬 수 잇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솎아내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다른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전인적 발달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젤 / 2014-02-06

    요즘은 어딜 가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자주 불립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가 그렇고, 아카데미에서 입시생들을 비롯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렇고, 2014년에 들어와서는 교회에서 청소년성가대를 맡게 되면서 그나마(?) 선생 자리로부터 자유로웠던 주말마저 선생님의 임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처음엔 별 생각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선생"이라는,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부담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의 성취도나 레슨비에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조언을 해주고 지도해주어야 하는 입장은 참 오묘해서, 우위에 서있다기 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가끔은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쩍 요즘엔 선생으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웬만한 학생이나 부모님, 선생님들은 아마 한 시간은 거뜬히 열변을 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문제인줄 알면서도 누구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거대한 "교육의 문제". 모두가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모두가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교육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갑갑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적나라하게,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과연 교육 발전에 어떠한 도움이라도 될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어왔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 정답을 알지는 못하니까요.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고 해서 포기하는 수 밖에 없을까요? 조금 더 오래 산 인생의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막힐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다 불평하고 비판할줄만 알았지 교육에 대한 깊은 사유에 잠겨본 적은 없지 않을까 반성도 되고요.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정되고 부족한 지식에 금새 한계에 부딪혔던 교육사유. 바로 이 제목으로 발간된 신간 소식에 두근두근했답니다! 게다가 교육전문가 함영기 선생님의 저서라니 더욱 기대가 컸고요. 이 시대 비뚤어진 교육에 신음하는 학생들과 부모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교육의 최전선에서 전쟁같은 나날을 보내는 선생님들에게 건네는 책, <교육사유>를 소개합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왜 그렇게 대학에 목숨을 거는 거니?" "엄마아빠가 대학에 안가면 안된다고 하시니까요." "그럼 네 생각은? 너는 뭘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일단 대학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식상해서 드라마의 의미없는 지나가는 대사 정도로 느껴지는 이 대화를 매주 반복하다 보면 과연 이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는 있는걸까 안타깝습니다. 특히 2015년 대입을 목표로 하는 입시생들은 시험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점점 "성취할 수 없는 인생의 목표" 앞에 주눅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선설을 믿지도 않고, 아이들이라고 무조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참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고, 바라는 무언가가 다르고,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조차 다르지만, 실수조차 밉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있는,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싫은 소리를 하고 꾸짖을 수 밖에 없어도,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지’ 하고 되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요.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아직도 교실에 처음 들어갔던, 학생들을 처음 만났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말도 안되는 반응에 흐리멍텅 풀어진 눈, 5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던 모습에 경악하기도 했었고요. ‚내가 뭣하러 이 짓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매일 삼키곤 했는데, 그러던 마음에 변화가 온 것은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생각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집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비뚤어진 행동이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을까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느새 스스로가 어른이 되어버린 후,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들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현재 아이들의 모습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 중에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성인 사회가 있고,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경쟁 시스템이 있다. 이 경쟁기제 안에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개인 환원적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이러한 구시대적 관행과 시스템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더욱 강화하려 한다. 그리고는 교사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자라나는 세대를 관리하고 통제하려 한다. (36 페이지) ‚네가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거야’ 혹은 ‚네가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 인생이 이꼴이 된거야’ 혹은 ‚너의 패배는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야’라는 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길지 않은 삶의 시간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것인데, 개인의 성공(과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지만)여부를 전적으로 개인 자체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지! 시험을 잘 보지 못한 것도, 대학에 가지 못한 것도, 취직에 실패한 것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책임이라고 (굳이 다른 사람을 탓해야 한다면 경제력이 없어 남들처럼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부모님이 아닐까요?) 울음을 삼켜야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논리 아닌 논리가 우리 사회에서는 기정사실처럼 통하니 그것이야말로 땅을 칠 일입니다. 저자는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결국 수능이, 평가 기준이, 학교 구조가 잘못되기 이전에 사회적 통념이 병들었기 때문에 가시적인 요인들을 알량하게 바꾼다고 해서 결코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미래에는 조금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다면 그 고통은 감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현재를 사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전도사였다. 확실히 과거에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네 꿈을 이룰 수 있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들이 먼저 안다. 꿈을 꾼다고 아무에게나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166 페이지) 훌륭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특목고에 진학한 뒤 소위 SKY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공채에 합격하는 것. 부모님들 중 열이면 아홉이 원하는 아이의 미래이자, 아이들 중 열이면 아홉이 자신은 이룰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낙심하는 미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가야만 하는 길,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중도 하차라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온천하에 알리는 일이 될테니까요. 지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패배"를 하루라도 더 늦추어 보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불가능한) 질주를 시작하는 그들에게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니?"라는 질문은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바보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그 실체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하다 상어가 인간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바다 속에 튼튼한 집을 지어 주고 튼튼하고 쾌활하게 키울 것이다. 유쾌한 물고기가 상어의 먹잇감으로 더 좋을 테니 말이다. 이제 상어는 학교를 만들고 도덕, 지리, 예술을 가르칠 것이며, 이 모든 가르침은 상어를 위해 영웅적으로 희생하게 만든다. 또한 몇몇 물고기에게는 더 높은 자리를 주어서 더 작은 물고기들을 관리하도록 특권을 준다. 여기서 브레이트는 작은 물고기들을 관리하는 특권을 가진 물고기를 ‚선생’으로 보았다. 근대적 학교 제도를 통렬하게 조롱하고 있다. (63 페이지) 베르톨드 브레히트의 "상어 이야기"는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섬뜩합니다. 체제가 만들어낸 교육에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배운 것은 많아질지 몰라도 체제에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덫에 걸리고 맙니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쪽 눈을 감게 되고, 불공평한 것을 알면서 나머지 눈조차 감아버립니다. 교육이 정치와 만나는 그 순간 교육은 정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과 교육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의 행복도는 가장 낮은 나라. 수능 날이면 비행기의 이착륙이 제한될 정도로 온 나라가 교육의 영향을 받는 나라. 매 년 너무나도 많은 아이들이 성적이라는 알량한 평가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나라. 교육이 언제부터 아이들에게 필요악의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안타깝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좋은 교육 환경과 더 훌륭한 교육 과정을 약속하지만 과연 그것을 누려야 하는 아이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과연 그들이 바라고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교육 여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학교가 괴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공부와 쉼, 놀이의 공간으로 아이들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314 페이지) 세계 최고의 교육 환경으로 인정받는 북유럽 교육 시스템에서 저자는 새로운 학교의 미래를 꿈꿉니다. 그들의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서, 교육 수준이 좋아서 본받자는 것이 아닌 진정한 교육이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학업 성취도로 아이들을 나누고, 학년제도로 배움을 제한하고 강요하며 개인의 능력을 수치화하는 평가로 아이들에게 주홍글씨를 달아주는 행동을 멈추자는 것입니다. 특히 평가에 있어서 저자의 주장은 가뜩이나 평가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에게 비수처럼 꽃혔습니다. 본시 평가란, 가르친 사람이 가르친 아이들을 대상으로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를 보는 행위이며, 평가의 결과가 다시 가르치는 행위를 개선하는 것으로 환류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가의 참된 의미다. (246 페이지) 평가로 인해 평가받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바로 선생이라는 것. 아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계획한 만큼,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평가라는 것. 어쩔 수 없는 상대평가라고, 구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기 마련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았던 저에겐 큰 깨달음이자 도전이 되었답니다. 설사 아이가 학습 능력이 부족하여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학습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부분이고, 선생으로써 이 경우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가는 그동안의 성과를 점수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생으로써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학교.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불가능해보이는 만큼 더욱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교육의 이상향.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일한 사회적 환경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교육"산업"과 교육"사업"이 연결되어 있기에 그것 모두를 개선하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고되고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런 사회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는 쉼 없이 그러한 교육적 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해 잊지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서가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교사입니까? 교사는 ‚천직’이라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직업이라고 할 만큼 소명을 가지고 임해야만 하는 자리인 것이죠. 학교 선생님이건, 대학 교수님이건, 학원 선생님이건 상관없이 가르치고 교육하는 자리에 있는 우리들은 학생들을 대함에 있어 분명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교육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그렇고, 부수적인 요소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 과정에 터무니없는 박봉 때문에, 말도 안되는 처우에 그렇습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데,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게 되기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교사들은 선생과 직장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자는 또한 교사가 교육에 집중할 수 없는,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는 교육체계가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겉핥기 식의 교육 환경 개선과 껍데기 뿐인 교육연수, 모든 것을 숫자와 점수로 환산하는 평가제로 인한 여러가지 비리들로 인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승진을 위하여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게다가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지 못하거나 탈선이라도 하게 되면 그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교사의 탓으로 넘기기 일쑤이기 때문에 교사는 교육에 다가가기도 전 엄청난 업무와 부담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박봉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초인과 맞먹는 스펙과 역량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죠.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담보할 수 있다.’ 이것은 평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에 찌들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교사들이 교단에 만연할 때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학부모들도 내 아이만 잘 봐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먼저 교사가 건강하게 우뚝 서서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신경 쓰는 교육 구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320 페이지)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교사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부족했던 모습과 아쉬웠던 점에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스스로가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 한 사람이 변화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교사라는 통념에 굴복하고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부터 변해야 한다’라고 느낀 것은, 이 사회 전체가 변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새로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적어도 그 반경에 있는 학생들만큼은 우리 사회의 변질된 교육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교사라는 것은 환경과 사회적 풍토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육적 이상에 따라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런 천직이 아닐까 싶습니다.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지난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에 따르면, 갈등을 겪고 있는 부모와 자녀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놀랍게도 불안함(부모)과 미안함(자녀)이었다고 합니다. 자녀의 무능함을 꾸짖고 다그치는 부모님과 육두문자까지도 거침없이 날리며 반항하는 아이들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유추하기 힘든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그토록 폭력적이고도 파괴적인 행동의 시작은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연약한 마음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원망스럽더군요. 확실히 이 책은 가독성이 높거나, 읽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 아닙니다.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유난히 오래, 어렵게 읽었습니다. 한 문장 안에 함축되어있는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말이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책을 두 번 읽었지만 앞으로도 몇 번 더 읽을 생각입니다. 이 책에 담긴 교육에 대한 사유의 마지막까지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요. 문득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으로 "우리 교수님처럼 인자하고 사랑이 많은 교수님"이라고 적어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예원학교 시험을 위해 이화여대 교수님께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마 ‚선생’이라는 자리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 꿈을 이루게 된 지금, 조금 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이 책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리카씨 / 2014-02-05

    확실히 이 책은 가독성이 높거나, 읽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 아닙니다.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유난히 오래, 어렵게 읽었습니다. 한 문장 안에 함축되어있는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말이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책을 두 번 읽었지만 앞으로도 몇 번 더 읽을 생각입니다. 이 책에 담긴 교육에 대한 사유의 마지막까지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요. 문득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으로 "우리 교수님처럼 인자하고 사랑이 많은 교수님"이라고 적어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예원학교 시험을 위해 이화여대 교수님께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마 ‚선생’이라는 자리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 꿈을 이루게 된 지금, 조금 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이 책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리카씨 / 2014-02-05

    이 책은 함영기 선생님의 <교육사유>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나라는 '백년지대계'라고 부를 정도로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 책 <교육사유>가 특별한 의미로 와닿았습니다. 현 교육의 실태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까지 두루두루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더불어 가져다주는 책이어서 더욱 뜻깊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교육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실용주의에 대한 해석과 비판, 그리고 제 2장으로 넘어가서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치유를 받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부분이 특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보통 교육의 주체라고 이야기하는 학교와 교사, 학생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내용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소통하고 진정한 래포를 형성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맺음 이야기, 민주적인 풍토의 학교 구성원 관계, 핀란드 고등학교의 놀라운 이야기들까지 모두 몰입하여 읽고 느끼는 것도 남다른 구성이었습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가 상생하는 가장 중요한 장이 바로 수업이 아닐까 싶은데, 그에 대한 소개와 저자의 생각과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적절하게 잘 제시하고 있어서 수업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교육에 대한 평가적 요소와 혁신과 제안에 대한 이야기까지 교육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한데 모인 구성이어서 더욱 마음에 들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연모 / 2014-02-05

    교육.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기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상처로 들릴 수도 있을 단어이다.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다양한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교육’의 울림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만큼 어느 누구든 할 말이 많고 관심이 높은 단어가 또 있을까? 저자는 중학교와 대학에서 또한 신문사의 시민기자, 온라인 교사공동체 등의 활동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평소 생각을 한 권에 담았다. 책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읽기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오랜 교직 경험이 있는 분과 대포집에서 술 한 잔 하는 기분이 들었다.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기분이랄까? 독서이긴 하지만 공감하는 부분, 평소 생각해왔던 부분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저자와 대화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크게 다가온 것은 ‘교육’과 관련된 장면에서 수치로 평가하는 것의 한계, 수업에 전념하기 곤란한 교사의 직무 환경 개선, 학생들에게 선행 학습 등 과잉 교육을 하고 있는 현행의 문제점 등이었다. 다양한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주고 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해주기는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이를 바탕으로 한 더 깊은 논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식상한 말일지는 모르지만,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등이 함께 우리의 교육을 위해 협력하는 것,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사례들도 있다. 기업도 내일 아침 일어나 얼른 출근하고 싶은 회사가 되도록 경영진들이 노력하며 기존의 사고를 바꾸는 시도가 있듯이 즐거운 학교, 빨리 등교하고 싶은 학교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점들에 대한 논의, 우리 공동의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김은희2 / 2014-02-05

    획일적인 입시교육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였고, 대학학력고사와 그 당시 새로운 입시제도인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이에 끼여 재수는 생각지도 못하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입학한 세대로서 이제는 학교에 입학하는 자녀가 있는 학부모가 되어 현재 교육과정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입시제도가 바뀌어 가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고, 모 정부시대 때에는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지더군요. 이 번 정부에서도 바뀐 교육정책 때문에 몇 년 사이로 새로운 입시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또한 매체에서 떠들어 대는 공교육의 붕괴와 학교폭력과 학생자살률 1위, 행복지수 꼴찌라는 말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왔는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어버려 창피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대한민국 교육의 현 실태 속에서 내 자녀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든 학생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불편한 교육과정 속에서 현 중학교 선생님이자 예비 교사들을 지도하고 있는 함영기 저자의 책 <교육 사유>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조적이며 개별적인 문제점들을 바라봐야 한다며 사회적인 측면과 개인과 교사와 학생의 측면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들춰내어 모두가 교육에 대한 사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확인 가능한 목표 진술 관행과 선발적 교육관의 만남은 이렇듯 영혼 없는 미래의 성인들을 양산한다.” 이 책에서는 현 교육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차를 중시하는 선발적인 교육관에서 비롯한 교육과잉,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정책, 일제고사와 각종 학교와 시도교육청 평가의 표준화된 잣대, 교사의 능력을 절차와 매뉴얼로 고정시키는 행위, 교육을 출세의 도구로 생각하는 관료들, 학생들과 소통의 단절,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한 학교 건축물, 상상과 사유가 멈춘 교육, 교사들의 소모적인 행정 업무 과다 등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각각의 이유에서 발생된 것이 아닌 모두가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이란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생각들에서부터 생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책을 수립하는 관료들이나 가르치는 교사나 학부모를 포함한 시민이나 학생까지 포함한 모두가 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한 사유의 부재임을 강조합니다. “전인적 발달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전인적 발달이란 정의를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참으로 몹쓸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자꾸 본질에서 벗어난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책에서는 현재 교육의 문제점이 바로 학생의 전인적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는데 그럼 아이들의 전인적인 교육의 발달을 위한 앞으로의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대안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나라 교육의 병증이 심해서 대안보다는 아직도 복잡하게 꼬여있는 문제점들을 발견하는 데에도 버겁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이 있더라도 개선까지 얼마나 걸리지는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새롭게 교육 정책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이제 다음 세대에는 희망의 교육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북유럽과 같은 교육 선진국의 시스템을 전면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이란 교육의 핵심을 다시 기억하여 그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보자는 것입니다. 즉, 구체적으로 저자가 제시한 제안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나 경제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교육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시민으로서 제도적 절차에 참여하여 민주시민의 본분을 다하고, 몇 년 안에 바뀌는 교육정책이 아닌 향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교육비전을 세우는 정책 입안자들의 교육 철학을 재정립하며, 학교에서 교사들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여야 하고 학생들을 통제나 관리하는 제도에서 벗어나 배움과 돌봄이 공존하는 구조로 바뀌게 하는 방법 등입니다. 전인적 교육의 중요성과 그런 교육시스템의 제안과 더불어 이 책의 관점은 ‘교육에 대한 사유’ 인데 사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교육의 개선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면서 사유만을 강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반문도 해보구요. 하지만 사유를 통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지면서 그런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아가 많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할 것이고 올바른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교육구조의 혁신이 이루어져 누구나 꿈 꿀 자유를 갖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지식들은 아이들의 사유와 연결될 때만 가치를 지닌다. 아이들에게서 상상과 사유가 멈추면 교육도 끝이다.”

    현답 / 2014-02-05